[천자 칼럼] 지폐 인물

입력 2015-06-21 20:33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화폐는 단순한 지급수단을 넘어 한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처럼 종종 여겨진다. 그런 이유로 각국은 화폐, 특히 지폐에 고유의 문화와 역사 사상 자연 등을 고스란히 담아내려고 노력한다. 지폐 도안으로 그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이 선택되는 것 역시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지폐 등장인물은 나라마다 그 나름으로 특성이 있지만 외국의 경우 대체로 매우 다양한 시기의, 다양한 인물군이 지폐에 등장한다. 미국 달러화 지폐에는 벤저민 프랭클린과 워싱턴, 링컨, 해밀턴, 잭슨 등 역대 정치인과 전직 대통령들이 유독 눈에 띈다. 일본은 세균학자(노구치 히데요·1000엔), 여성작가(히구치 이치요·5000엔), 사상가(후쿠자와 유키치·1만엔) 등 등장인물의 이력이 다채롭다. 프랑스 프랑화에는 역시 예술의 국가답게 세잔, 생텍쥐베리, 드뷔시 등 화가 작가 작곡가 등이 자리잡고 있다. 남아공 화폐에는 2013년 타계한 만델라 전 대통령이 벌써 등장했다.

반면 우리나라 지폐 인물은 모조리 조선시대, 그것도 14세기부터 16세기 인물로 국한돼 있다. 게다가 유학자 내지는 선비 일색이다.

1960년 1000환 지폐에서 첫선을 보인 세종대왕은 이후 500환→100원→1만원권에서 줄곧 모습을 보이고 있다. 5000원권의 율곡 이이는 1972년부터, 1000원권의 퇴계 이황은 1975년부터 등장했다. 2009년 6월부터 발행된 5만원권에는 신사임당이 유일한 여성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국내 최초 은행권으로 1950년 6·25 발발 직후 나온 1000원권에 잠시 등장했었지만 1960년 하야와 함께 자취를 감췄다. 이승만을 제외하면 모두 조선의 지배계층 인물이다. 성씨 또한 이씨에 집중되어 있다.

124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 지폐에 여성 인물이 등장한다고 한다. 여성 참정권을 보장한 미국 수정헌법 19조의 시행 100주년을 맞는 2020년부터 10달러짜리 지폐에 여성을 새겨넣겠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성이 모습을 보여줬던 것은 1896년까지 유통된 1달러짜리 은태환 증권이었다. 현재 10달러 지폐 인물은 미국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으로 새로운 10달러의 주인공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우리는 등장인물의 다양성부터 높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조선 이전은 물론 근·현대 인물 중에서도 새 후보를 찾아보면 어떨까. 이제는 학자나 정치가 외에 다른 분야 인재가 등장할 때도 됐다. 지폐만 놓고 보면 한국은 여전히 사농공상의 질서가 지배하는 유교의 나라처럼 보인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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